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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띠, 띠, 띠……뚜~~철컥!”

 

12시……나는 내 작은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보다 더 싸늘한 공기가 확 느껴 진다. 사람의 온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싸늘한 공기.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싸늘한 공기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불을 켜는 일이다. 하지만, 왠지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오늘 나는 누구보다 편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야근은 그걸 용납해 주지 않았다. 괜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옷을 가라 입지도 않고 그냥 소파 같은 침대 위에 쓰러진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나보다 먼저 우는 녀석이 있었다. 바로 냉장고다.

 

“웅~~~”

 

벌써 10년도 더 된 녀석이다. 그때만 해도 최신형으로 나온 양문형 냉장고였다. 항상 심기가 좋지 않았던 엄마가 홧김에 충동구매 했던 것이었다. 엄마 심기가 항상 불편했던 이유는 아빠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헤어지셨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첫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왔을 무렵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분들이다. 원래는 그 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혼을 결심하셨다. 하지만, 한참 사춘기였던 딸을 위해 대학 진학 때까지는 참고 살기로 합의를 하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 날 밤 이 냉장고 앞에서 한 없이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냉장고가 이렇게 울기 시작한 것은. 녀석이 울 때면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녀석 때문에 시원하게 울지 못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랬다. 녀셕은 나보다 한 발 앞서 울음을 터뜨려서 내가 울어 버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괜히 짜증이 나서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 본다. 문짝 구석에 예전에 먹다 남은 소주 한 병이 보인다. 안주거리를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별수없이 초록빛 소주병 하나를 달랑 꺼낸다. 그리고 불 꺼진 TV 앞에 철퍼덕 앉는다. 잔도 없이 맥주처럼 소주를 마신다. 소주병을 내려 놓다가 불 꺼진 TV화면에 비친 내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괜히 TV를 켜 본다.

 

“핑~~~”

 

이런 소리를 내며 TV가 켜진다. 그리고 총 천연색 화면안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수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 낸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귀보다 눈이 눈이 시리고 아프다. 문득, 이래서 TV는 가까이서 보면 안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냉장고 때문에 쏙 들어갔던 눈물이 이제서야 터졌나 보다. 아니, 내가 취한 건가? 더 이상 눈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다시 TV를 껐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문득, 나는 아빠가 생각 났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는 종종 지금의 나처럼 이 TV앞에 앉아서 소주를 마셨다. 그땐 그 모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 내가 이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참 우습게 아빠를 닮아 있는 내가 어이없다. 하지만, 아빠는 또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가 떠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엄마의 재혼 소식이 들었을 때, 그리고 엄마가 내게 아주 어린 동생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빠는 나처럼 슬퍼하지 않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예감대로 몇 년 후 아빠 또한 엄마처럼 새로운 인생을 찾으셨다. 대학교 졸업식 무렵이었다. 아빠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을 사주시며, 결혼을 하신다고 말했다. 나보다 열살 정도 많은 여자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이사를 간다고도 했다. 그렇게 아빠의 인생은 나를 아주 많이 빗겨 갔다. 지금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커다란 TV도 그때 아빠가 내게 남겨 주고 간 것이다. 내 조그만 오피스텔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브라운관 TV. 지금은 TV기능보다 장식장 역할을 더 하는 TV. 녀석은 이제 올해가 지나면 원래의 기능도 완전히 상실한다고 한다. 녀석이 참 나만큼 불쌍한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울컥한다.

 

 

 

“세탁!~~~~”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러다 번쩍 눈이 떠진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 나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내 몸이 튕겨져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미친 듯이 세수를 한다. 다행히 옷은 입은 채로 쓰러져 자서 자켓만 바꿔 입으면 될 것도 같다. 목이 몹시 말랐지만, 물을 마실 시간이 없다. 자켓만 바꿔 입고 나는 달려 나갔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지각이라니! 사실, 오늘 같은 날은 출근을 안해도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늘도 출근 시간에 목숨을 걸까? 어쩌면 몇 년 동안 학습된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르르~~~”

 

점심시간, 갑자기 휴대폰이 울린다. 누구지? 전화를 받으니 오피스텔 관리인 아저씨였다. 말해 두었던 동네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문을 열어 줘도 되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말했다. 비밀번호는 바로 바꿀 거라고도 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어 놓은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집을 보러 온 것이었다. 문득, 집안의 풍경이 떠올랐다. 너저분한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간다는 게 영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상보다 늦어 졌지만, 결국 나는 떠나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혜야!”

 

일찍 퇴근을 하고 썰렁한 집에 발을 들여 놓자 마자, 전화 벨이 울렸다. 엉겁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였다. 3개월 만이었다. 오피스텔 건너편 커피숍에 와 있다고 했다. 하필이면 오늘 엄마는 나를 찾아 왔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맘을 엄마가 바꿔 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방만 던져 놓고 나는 커피숍으로 갔다. 엄마는 그 전 보다 확실히 예뻐져 있었다.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굵은 주름은 있었지만, 확실히 나 보다 더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누가 봐도 행복한 여자였다. 엄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까칠한 내 얼굴을 걱정해 주기도 했다. 30분 정도 엄마의 수다가 이어졌다. 아빠와 살 때 엄마와는 너무 달라서 조금 낯설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확실히 엄마는 수다가 늘었다. 엄마의 어색한 수다를 들으며 나는 문득 엄마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엄마는 잠시 미안한 듯 웃으며 나를 본다. 그리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엄마의 아이, 그러니까 내 동생이 8살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웃었다. 어차피 서울에 있던 엄마도 내게 별 의미가 없는 엄마였다. 엄마가 캐나다로 떠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게 없었다. 그런대도 엄마는 무척 미안한 듯 했다. 그리고 자리 잡히는 대로 놀러 오라고도 했다. 말이라도 고마웠다. 담담하게 엄마를 보내고 내 조그만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부산에 사는 아빠와 연락이 끊긴지는 꽤 오래 되었다. 부산이라는 거리가 우리 부녀의 사이를 멀게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연락이라도 하고 지내던 엄마가 그 보다 수십 배 더 먼 캐나다로 떠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핑 돌았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이라니!

 

 

몇 개월 전 나는 내게 가족과도 같던 한 남자와 헤어졌었다. 그랬다. 사랑이라기 보단 가족 같은 의리로 지낸 10년이었다. 그렇게 내 옆을 든든히 지켜주던 그 남자가 나를 떠났다. 처음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는 조용히 나를 떠났다. 그렇게 그를 떠나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람처럼 떠 돌던 이야기들이 내 귀에 들리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한 두 번 얼굴을 봤던 그의 부모님들이 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했다. 싫어했던 이유는 부모가 이혼해 각각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컸다고 한다. 나의 우울한 얼굴과 낯가림 심한 성격은 그저 부수적인 이유였다니.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내 부모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게 조금 서럽고 억울하기는 했다. 나를 떠난 그는 고맙게도 나를 위해 그런 부모님과 몇 년을 홀로 싸웠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지쳐 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는 힘겨운 싸움에 그는 그렇게 넉 다운이 되었던 것이다. 혼자 싸우고 혼자 항복해 버린 그 사람에게 고마워 할 수도 원망 할 수도 없었다. 다만, 차라리 내가 싸웠다면, 아니 같이 싸웠다면 이렇게 쪽 팔리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결국,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그 사람도 모두 나를 떠났다. 웃기는 것은 모두 나름의 노력을 하다 떠났다는 것이다. 내 곁에 머문다는 것은 그렇게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문득 미안해 졌다. 이런 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에게 나는 어쩌면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젠 그들을 내가 먼저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바람처럼 조용히 그리고 깔끔하게 그렇게 떠나 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떠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떠날 방법은 많지만 모두 만만치 않은 것 들 뿐이었다. 결국, 나는 수면제를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가장 조용하고 깔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면제를 얻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꽤 많은 병원과 약국을 들락거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면제를 모아 놓을 커다란 약통도 필요했다. 다행히 집에서 굴러다니는 커다란 껌통을 수면제 약통으로 만들었다. 제법 수면제가 모였을 무렵, 그 통을 흔들어 보면 껌이 가득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수면제를 모으면서 내가 떠날 날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이 바로 오늘 이었다.

인생이란 것이 태어난 순간부터 뜻대로 되기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떠나는 것도 이렇게 힘든지 새삼 깨달았다. 수면제는 이미 며칠 전 껌 통을 가득 채웠다. 다만, 오늘을 지키기 위해 참고 기다렸다. 그러다 결국, 나는 또 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야근이 잡혔던 어제는 몸이 너무 피곤해 이 계획 자체를 잊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오늘 엄마의 마지막 방문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미리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계획했던 거사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한참을 찾았다.

하지만, 없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도 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정성스레 모았던 껌 통 아니 수면제 통이 없어진 것이다. 짜증을 넘어선 화가 났다.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지만, 그림자 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조심스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똥~~~”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까지 뒤지고 있었다. 벨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닥치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찰칵~”

 

안에서 거는 잠금 장치를 한 채 문을 빼꼼히 열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작은 문틈 사이로 그 남자가 불쑥 껌 통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깜짝 놀랐다. 없어졌던 내 껌통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그 껌통을 낚아 챘다. 남자는 흠칫 놀라는 것 같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낮에 부동산업자와 집을 구경한 사람이라고 했다. 실수로 식탁에 놓여 있던 껌 통을 가지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그냥 알았다고만 대답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 낯선 남자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 서야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껌 통을 들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크게 쉼 호흡을 하고 나는 껌 통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접혀 있던 작은 메모지 하나가 껌 통 입구로 불쑥 튀어 나왔다. 이상하단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그 메모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멋대로 껌통을 가지고 와서……

다만, 껌 통에는 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짜 껌 가득 채워드립니다. ^^

껌처럼 상쾌한 인생 사시길 바랍니다! ”

 

어느새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메모지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껌통을 쏟아 수면제처럼 한 움큼의 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달콤하고 화사한 맛의 껌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단 물 빠진 껌처럼 질긴 것이 내 인생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한 움큼의 새로운 껌이 어디선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수면제 대신 껌을 씹으며 인생을 깨닫고 있었다.

 

 

하드코어 인생아 - 옥상달빛 (노래가사)

 

 

뭐가 의미 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쳐진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별님 같은 두근대는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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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e602